2010. 9. 4. 08:07

장진영,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서 슬펐던 결혼식

서른일곱살의 여배우 장진영은 위암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서 세상과 이별을 했어요. 그렇게 그녀가 떠난 지 1년이 된 오늘. 죽음을 앞둔 1년 그 너무나 아프고 아름다웠던 기록은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많은 이들을 위한 사랑의 기록이었어요. 

여배우의 삶, 그 영화 같은 운명을 살다간 장진영




장진영이라는 배우가 가지는 장점은 다큐멘터리의 말미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들이 이야기 했듯, 호탕한 웃음이었어요. 그 환하고 밝은 웃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천상 배우의 모습 그대로였지요. 그 어떤 어려운 순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깊은 사랑을 간직하려 했던 서른일곱 살의 여배우는 조용히 그러나 사랑을 받으며 하늘로 향했어요.

방송은 그녀의 마지막 남자이자 남편이었던 김영균을 통해 마지막 1년을 돌아보며 그녀를 함께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사랑했는지 이젠 고인이 되어버린 장진영의 과거를 추억하는 과정은 아픈 기억을 반추하는 일일 뿐이었어요.

그녀를 아름답고 행복하게만 추억하기에 그녀는 너무 일찍 세상과 등졌기 때문이지요. 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따라간다고 했나요. '국화 꽃 향기'에서 위암환자로 열연했던 그녀는 거짓말처럼 현실에서도 위암 환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옆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준 남자가 있어 그녀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린 시절부터 예뻤던 진영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에 의해 여자다운 여자로 키워졌다고 해요. 조신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녀는 그렇게 예쁘고 착한 학생으로만 성장하는 듯 했지만 성인이 되며 그녀는 그녀를 위한 도전을 시작했어요.

고전적인 여성상으로만 키워지던 그녀가 자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계기는 미스코리아에 출전하는 것이었지요. 어린 시절 주변에서 예쁘다는 말만 커왔던 그녀의 선택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몰라요. 자신이 살던 고향이 아닌 충청도에서 진으로 뽑혀 본선에 나선 그녀는 이를 통해 연예인으로서 삶을 시작했어요.

광고 촬영을 하면서 무명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배우 지망생일 뿐이었어요. 꾸준하게 노력하고 도전해왔던 그녀에게도 기회는 찾아왔지요. 자신을 버리고 심지어 여자로서의 존재감까지 버린 열연을 보여주었던 '소름'은 그녀를 진정한 배우로 만들어주었어요.

영화를 봐서 알지만 잔혹한 핍박을 받고 죽어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그렇게 그녀는 여자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역할을 망설임 없이 도전하며 연기자 장진영으로서의 존재감을 만들어나갔어요.

그런 그녀가 마지막 남자인 남편을 만난 것은 2008년 친구의 소개였고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반했던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남들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그들이 행복한 연인으로 결혼해서 누구나 누리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부부로서 살아갈 것 같았지만 운명은 그들에게 가장 아픈 시련을 던져주었어요.

만난 지 얼마 안 되서 위암 판정을 받았어요. 더부룩함으로 찾았던 병원에서 검사결과 위암 4기로 수술도 쉽지 않다는 판정은 그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충격일 수밖에는 없었어요. 가장 힘든 상황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돈독하고 특별할 수밖에는 없었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의 순간 자신의 곁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함께 아파했던 남편의 존재감은 병과 싸워야만 하는 장진영에게는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을 거에요. 처음 호전되었던 그녀의 병세는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되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어요.

암 투병 환자들처럼 머리가 빠지고 항암제 치료에 힘겨워하던 그녀는 그 힘겨운 순간에도 항상 밝은 웃음으로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어요. 그렇게 자신의 병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려던 그녀는 멕시코까지 가서 치료에 매진했어요. 결과적으로 멕시코 행이 그녀의 삶을 조금 빨리 흘러가게 만들었지만 그 힘겨움은 어쩌면 그들의 사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멕시코에서 돌아와 남편 김영균의 누나 집에서 머물던 그들은 장진영이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라스베가스로 가서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렸어요. 화려하고 멋진 결혼을 꿈꿨을 아름답기만 한 여배우가 하객 4명 앞에서 초라한 예복을 입고 홀로 꽃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해 보여서 슬프기만 했어요.

암 투병으로 홀쭉해진 그녀는 초라한 웨딩드레스를 입고도 행복해 했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옆에서 지켜주는 남편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거에요. 국내로 들어와 다시 병원에 입원한 장진영에게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 있었어요.

남편 김영균은 아내 장진영이 아픈 후 처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의사의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귀신에라도 홀린 듯 혼인 신고를 하러간 남편과 그런 소식을 듣고 울던 아내의 모습은 살아있는 그에게는 가장 특별한 눈물이었을 거에요.

2009년 8월 28일 혼인신고를 하고 사흘이 지난 9월 1일 오후 4시 장진영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어요. 마지막 가는 그녀에게 해복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던 남편 김영균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뿐이었어요.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성공한 딸은 모든 것을 베풀어주었어요. 뒤늦게 딸의 노력과 정성에 마음을 열었던 아버지는 자신이 좀 더 일찍 딸을 응원하지 못했음에 슬퍼할 뿐이었어요. 그렇게 남겨진 아버지는 딸의 이름으로 딸을 영원히 추억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있어요.

자신을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해 베풀 줄 알았던 그녀는 너무 일찍 우리 곁에서 떠나갔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사랑했던 남편과 자신보다 앞서간 딸을 위해 그녀의 호를 딴 '계암 장학회'를 통해 매년 20명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너무 사랑했기에 보내기는 힘들었지만 남겨진 그들은 여전히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 아름답고 따스하기만 했던 그녀에 대한 기억들은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만들었네요.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해준 '장진영의 마지막 1년'은 눈물로 쓴 아름다운 1년 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