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2. 07:25

기황후 하지원의 옹호 발언과 변호인 송강호의 출연 소감이 가른 두 배우의 운명

역사왜곡과 미화 논란에도 방송되고 있는 '기황후'의 인기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입니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역사적 논란이 충분한 드라마가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출연 배우들조차 역사적 사실관계는 무의미하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최근 중국 하얼빈 역에 안중근 의사를 위한 역사 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규정하고 그런 범죄자를 기리는 기념관을 만드는 것은 역사적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기만 하면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조작하는 드라마도 한국에서는 시청률 20%를 넘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끔찍하기만 합니다.

 

원으로 끌려가 황제의 여인이 되고 이후 황후가 되어 조국인 고려를 침공했던 매국노를 국제적 인물이자 최초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칭송하는 작가들이 그린 드라마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끔찍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잘못된 시각에서 시작된 드라마가 정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지요. 여기에 주진모가 연기하는 충혜왕은 새엄마 겁탈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폭행을 일삼고 살인을 즐긴 포악한 왕이었는데 이를 미화해 고려 최고의 존재로 꾸민 작가의 의도는 경악스럽습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름만 바꾼 그들에게는 역사 인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하지요. 작가들이 참고 했다는 '고려사절요' 등 역사서에서도 기황후와 그녀의 형제들의 악행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겠다며 나선 작가들의 역사인식은 교학사 교과서와 유사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어 보이네요.

 

충혜왕에 의해 성폭행을 당항 경화공주를 드라마에서는 악랄한 악녀로 그리고 역으로 이름만 바꾼 충혜왕은 자주적으로 고려를 지키는 특별한 존재로 그리는 것 자체가 심각한 역사 왜곡이자 미화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수출을 하겠다고 만든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음에도 그 지독한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이들은 정말 대단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MBC 드림센터에서 열린 MBC 월화특별기획 '기황후' 기자간담회에 주연배우 하지원, 주진모, 지창욱, 백진희가 참석한 상황에서 하지원이 한 발언은 그래서 섬뜩합니다. 역사 인식과 관련한 그녀의 편리한 회피는 결국 우리 사회가 정상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니 말이지요.  

 

"촬영 스케줄 때문에 역사 왜곡(논란)이 계속되는지 잦아드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가정이다. 이 내용을 드라마에 가지고 와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좀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재미를 주기 위해서 왕유라는 가상 인물도 뒀다"

촬영이 바빠서 자신이 왜곡하는 기황후의 역사적 논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미 역사 왜곡과 미화 논란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기황후를 그저 최초의 글로벌한 여성이라고 이야기한 하지원에게 이 정도 회피는 당연해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매국노라 불러도 좋을 기황후를 글로벌 여성으로 찬양하는 순간 그녀에게 역사적 문제는 무의미했을 테니 말이지요.

 

역사적 왜곡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진이 나서 언급했던 서울대 이강한 교수의 주장에 대해 정작 본인은 자신의 논문을 그들이 제대로 읽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하는 이 교수는 "충혜왕 역시 궁궐 내 방직 공장을 차려서 여종을 끌고 와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죽인 자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는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작진들이 유일하게 긍정적인 역사적 평가를 했다고 언급한 교수마저도 자신의 논문을 왜곡해서 오독했다고 하는 상황에서 '기황후'의 역사 부재를 넘은 왜곡과 미화 그리고 책임 회피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황후 역을 맡은 하지원의 발언은 그래서 더욱 한심하고 난감할 뿐입니다.

 

 

역사 논란보다는 아이 낳는 연기가 더 힘들었다는 그녀에게 더 이상 기대를 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분명해보이지요.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없는 아이를 낳았으니 역사 왜곡 논란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미련하고 위험한 짓인지 그녀만 모르는 듯합니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드라마에서 왜 역사를 이야기하느냐는 주장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외치는 일본과 같은 논리이니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 섭외를 한 번 거절을 했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돌아가신 그 분을 모티브로 해서 이 영화가 발단됐기 때문이다"

"그 분의 인생의 한 단면을 제가 누를 끼치지 않고 감히 표현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가 잊혀 지지 않아 출연을 결정했다"


천만 관객을 넘은 '변호인'의 주인공인 송강호가 밝힌 소감은 하지원과는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송강호 같은 배우가 이 영화를 선택한 것부터가 화제였습니다. 노골적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권력들이 판치는 세상에 30년 전 그가 인권 변호사가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을 다룬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드라마처럼 엄청난 돈이 보장된(하지원 같은 경우 회당 수 천 만원의 출연료를 받으니 최소한 5억 이상의 출연료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흥행 역시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내 최고의 흥행 배우인 송강호가 '변호인'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라보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한 개인을 미화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잘못된 권력 납용에 대해 반기를 든 변호인의 외침은 많은 국민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흥행 영화가 아닌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이미 넘겼다는 사실은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위해 영화에 동참한 송강호와 역사적 논란 속에서도 드라마에 출연한 하지원은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역사적 인식을 보여준 배우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송강호와 하지원이라는 배우가 보여준 극과 극의 선택은 결국 대중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당당한 천만 배우와 민망한 20% 시청률 배우의 운명은 이후 더욱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역사 왜곡과 미화도 상관없다는 배우라는 너무 큰 차이를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이런 차이가 크게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선택이 가져온 파장은 더욱 크게 깊게 남을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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