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4. 07:45

박유천 해무 그가 극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박유천의 첫 영화 데뷔작인 <해무>가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찬사는 당연했습니다. 김윤석과 문성근, 그리고 김상호, 유승목, 이희준, 한예리 등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는 점에서 박유천이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충분했고 동식이라는 배역에 박유천이 완벽하게 젖어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영화 <해무>는 이미 연극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았던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연극적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날 정도로 '전진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모습은 현재 상영중인 영화들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듯합니다. (이하 내용에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어요)

 

처음부터 재미를 위한 영화가 아닌 그 안에 담고 싶은 가치를 생각했던 <해무>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좁고 낡은 배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모습은 재미만을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에게는 실망일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그저 웃고 떠드는 영화를 원한다면 <해무>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를 돌아보고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단 한 번이라도 했다면 <해무>는 중요한 영화였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연극을 기반으로 한 것만이 아니라 2001년 실제 있었던 태창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요. 역으로 돌아가 보면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고, 영화는 그 연극을 원작으로 새롭게 각색된 셈이지요. 실제 밀항을 하던 태창호에서 조선족 20여 명이 숨지고, 이를 숨기기 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시체를 바다에 유기한 사건이 바로 <해무>의 실제 사건입니다.

 

 

해고를 나와 뱃일이 서툰 동식은 순박합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에게는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고 힘겨웠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뱃일을 하면서 할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뱃일 서툰 동식은 사고만 칠뿐 온전한 뱃사람이 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진호 선장과 선원들이 가족처럼 대하며 일을 익혀가는 과정이 그에게는 그저 좋았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전진호 기관실에서만 살아가는 기관장 완호와는 가깝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동식에게는 완호는 아버지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완호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선장 철주의 배려로 전진호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직 돈과 여자만 쫒는 롤러수 경구와 뭔가 어설프고 여자에게만 집요한 선원 창욱이 '전진호' 선원의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폐선이 되어야 할 전진호를 버릴 수 없는 선장 철주는 대출이라도 받아 배를 인수하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부인이 운영하는 횟집 역시 이미 수많은 보증이 걸린 상황이라 여유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과 함께 해왔던 전진호를 구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밀수였습니다.

 

 

중국 장물을 옮겨주는 것이 현재 고기를 잡는 것보다 훨씬 수익이 좋다는 생각에 선택했지만, 철주에게 주어진 일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은 당혹스러웠습니다. 짝퉁 금시계와 거액의 선불을 받고 마음을 고쳐먹은 철주는 '전진호'를 위한 명분으로 선원들과 함께 바다로 향합니다.

 

갑판장인 호영을 제외하고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바다로 온 선원들은 자신 앞에 던져진 돈을 보고는 무조건 선장의 말을 따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바다 위에서 밀항하려는 조선족으로 옮겨 실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진 홍매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든 민식은 그녀에게 첫 눈에 반했습니다. 여자와 돈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구는 밀항하는 조선족 아주머니를 탐하고, 이 과정을 목격한 창욱 역시 여자 찾기에만 혈안이 되었습니다.

 

선장 철주는 배를 구하기 위해서는 조선족 밀항을 성공시켜야 하는 당위성만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장의 말을 가장 완벽하게 실행하는 갑판장 호영 역시 선장과 동일한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배 안에만 갇혀 살았던 기관장 완호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조선족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교사 일을 했지만 임금 차이가 10배나 나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살리겠다는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그에게서 자신을 봤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거친 바다와 감시선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지요. 어창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조선족 남자를 잔인하게 폭행하고 바다에 던져버린 선장의 행동에 다른 조선족들은 무조건 선원들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잔인한 폭력 앞에서 작은 전진호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긴박함 속에서도 동식은 첫 눈에 반한 홍매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따뜻한 기관실 한 자락에 그녀의 자리를 마련해주며 성심성의껏 돌봐주는 민식에게 홍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지요.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어창에서 숨어있던 조선족들이 가스 중독으로 모두 사망하며 잔인하게 이어졌습니다.

 

이미 죽은 사체들이 가득한 배 안에서 선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이미 죽은 시체들에 상처를 내 고기 밥으로 바다에 버리라는 요구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선장의 말에 모두가 복종하지만, 조선족 교사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기관장은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기관장의 행동이 불안을 느낀 선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죽이며 사건은 점점 알 수 없는 지경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미스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해무>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을 듯합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 그리고 추격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은 충분히 재미있었으니 말이지요. 해무가 가득한 배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휘두르는 칼들 속에서 오직 자신의 가치관으로 인해 적이 되어가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지요.

 

모두가 연극과 영화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은 박유천의 연기를 궁금해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듯합니다. 다른 배우들과 다름 없이 완벽하게 배역에 녹아들어간 박유천의 모습은 흠잡을 곳이 없었으니 말이지요.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 왜 박유천을 칭찬하는지는 영화 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자가 되고 자신의 영화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작가인 심성보 감독 모두가 선택한 배우가 바로 박유천입니다. 그들이 그저 티켓파워를 생각해 연기도 안 되는 박유천을 선택했다면 이는 큰 오산일 겁니다. 심성보 감독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미 연기력을 검증받은 박유천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드라마만이 아니라 영화마저 장악한 박유천의 힘은 <해무>가 잘 증명해주었습니다. 거친 뱃사람 연기에 혼신을 다한 박유천의 연기는 김윤석과 문성근 등 쟁쟁한 배우들 틈에서도 화려하게 빛났다는 점에서 충분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영화 데뷔작이었지만, 박유천은 흥행에 목적을 둔 상업영화가 아닌 작품성에 집중한 <해무>를 선택하는 영리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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