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0. 11:49

김자옥 발인 수의대신 한복을 입고 떠난 그녀는 마지막까지 특별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김자옥의 발인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 빈소에서 엄수 되었습니다. 故김자옥 발인식에는 남편 오승근과 아들 오영환 딸 오지연, 김태욱 아나운서 등 가족들을 비롯해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많은 이들에게 큰 행복을 주었던 그녀의 죽음은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기만 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스타들이 그렇게 우리 곁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는 것 역시 그들을 사랑한 팬들의 몫이기도 할 겁니다. 항상 밝고 행복함을 보여준 김자옥의 별세 소식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영악하게 자신만을 탐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녀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환하게 웃으며 있을 것만 같았던 김자옥의 별세 소식은 그래서 많은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스타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일부에서는 누군가는 조문을 했는데 누구는 조문을 하지 않았으니 나쁘다는 식의 논리로 비난을 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쓸모없는 비난들은 그저 남들 비난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허튼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김자옥은 1951년 시인 김상화의 3녀로 출생했습니다. 김자옥은 청순하고 예쁜 외모로 1970년 한 방송사의 공채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증언하듯 어린 시절부터 항상 주목을 받아왔던 그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김자옥은 지난 1975년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수선화'에서 눈물의 여왕 타이틀을 얻으며 스타덤에 올라 현재까지 이어졌습니다.

눈물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그녀를 떠나보내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은 환하게 웃는 영원한 꽃누나였습니다. 배우만이 아니라 가수로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그녀는 이렇게 빨리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63세인 그녀는 앞으로 더 행복한 모습을 보였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자신의 병이 쉽게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아들이 장가를 가는 6개월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결혼식이라도 보고 떠나는 것이 유일한 꿈이자 희망이었던 김자옥의 모정은 많은 이들을 울게 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아들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김자옥. 그녀를 위해 남편은 마지막에 행복하게 떠날 수 있기를 기원했고, 김자옥 역시 환하게 웃으며 별세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해외 시상식을 간 적 있었는데 그때 한복을 입었다. 그래서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한복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던 것 같다"

 

故김자옥은 생전 인터뷰에서 한복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 해외 시상식에 한복을 입고 갔는데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자옥은 평소에도 자신은 수의를 입지 않고 평소 아끼던 한복을 입고 가겠다고 했다 합니다.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는 남편인 오승근이 평소 김자옥이 아끼던 한복을 가져와 그걸 수의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도 달랐던 그녀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얀 수의가 아니라 그녀가 가장 아끼는 한복을 입고 세상과 마지막을 고한 그녀는 그렇게 우리에게 영원한 공주님으로 남겨졌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메시지를 보내셨더라. (본인이) 길게 못 갈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하다는 내용이었고, 옆에 성탄 트리 불빛을 봤을 때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다고 하셨다"

"내가 성탄절 불빛을 보면 기뻐하셔야지 왜 벌써 우울한 얘기를 하느냐고 했는데 그 때 조금 아신 것 같다"

 

故 김자옥 주치의는 방송에 출연해 그녀가 이미 1년 전에 오늘을 예상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완치되었다고 생각한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지인들과 함께 마지막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꽃보다 누나'에 출연할 당시 완치 판정을 받고 회복을 하던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그녀가 피곤해 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옆에 있는 성탄 트리 불빛이 그렇게 기쁘지는 않다는 故 김자옥의 이야기는 주치의의 말처럼 언제가 찾아올 자신의 운명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듯도 합니다.

 

"지난주 일요일, 집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대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 우리 매형이나 조카들은 못 느꼈을 거다. 나는 형제라 그런지 한 달 전에 입원했을 때 이미 이별을 느꼈다"

"병원 나오기 전에 '누나 자'라고 하고 손을 꼭 잡았는데 누나가 눈물 흘리면서 작은 소리로 '자주 와'라고 했다. 원래 이런 말을 잘 안 한다. 형제들한테도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 정말 처음 이었다"

"누나가 나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구나 그걸 느껴서 그날 다 울었다. 병원에 나와서 주변을 한 시간 혼자 걸어 다니며 혼자 울었다. 겨우겨우 집에 왔다"

 

故 김자옥의 막내 동생인 김태욱 아나운서는 자신은 이미 이별을 감지했다고 합니다. 지난 주 집에서 마지막 대화를 했다는 그는 일주일 만에 그렇게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합니다. 하지만 한 달 전 입원했을 때 이미 이별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가 누나의 죽음을 감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병원에 입원한 김자옥의 손을 잡자 누나는 작은 소리로 "자주 와"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평소 형제들에게도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막내 동생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주 와"라는 이야기를 했음을 느낀 김태욱 아나운서는 그날 다 울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마지막을 감지하고 누구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울어야만 했던 그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얀 수의가 아닌 자신이 평소 좋아하고 아끼던 한복을 입고 떠난 김자옥.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특별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던 그녀의 맑고 환한 웃음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좀 더 오래 살면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모두의 마음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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