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9. 09:12

힐링캠프 허영만과 윤태호 그들이 진정한 위대한 이유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인 허영만과 윤태호. 그들의 교점은 허영만 화백의 문화생이 윤태호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해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생'의 작가인 윤태호와 '식객' 허영만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준비된 사제지간의 모습은 그들이 왜 최고인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허영만은 만화를 모르는 이들도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뛰어난 존재입니다. 만화가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허영만이지만 그에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이 존재했습니다. 아들뻘 되는 까마득한 후배들과 여전히 현장에서 부대끼며 만화로 승부를 하는 허영만은 진정한 만화가였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볼 수 있던 만화의 절반이 허영만 만화였다는 윤태호. 그런 어린 윤태호는 만화에 심취했고, 수없이 허영만 만화를 곱씹으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고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만화학원을 다니던 윤태호는 잘 곳이 없어 학원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고 합니다. 노숙을 하며 만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대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노숙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현재의 윤태호가 존재했을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그에게도 간절한 것은 존재했습니다. 그가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것은 바로 허영만 문하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며 자랐던 만화가의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그는 그 노숙 생활이 인연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가 노숙하던 아파트에 바로 허영만 선생의 작업실이 있었던 거였죠. 마침 허영만 문하생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윤태호는 그저 그 아파트에 허영만 작가가 있다는 것만 알고는 1동부터 31동까지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허영만 선생이었지만 문하생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준비한 그림을 그려서 찾아뵙지만 이미 남은 자리를 어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는 말로 거부당했다 합니다. 능력이나 실력보다는 간절함을 가진 누군가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허영만. 먼저 찾아온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허영만 선생으로 인해 운이 닿지 않은 윤태호는 두 번이나 그런 운명의 장난에 힘겨워 했다고 하지요. 세 번째는 화실의 경리를 보던 이가 문제의 문하생이 다시 나갔다는 연락을 받아 겨우 허영만 선생의 문하생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꿈꿨던 허영만 선생의 문하생이 되었지만 세 번이나 쫓겨날 수 있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합니다. 노숙을 해오다 갑자기 따뜻한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몸이 나른해지며 잠에 취한 윤태호의 나태함은 부적격 사안이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도 그리던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이 된 윤태호는 2년 만에 그곳에서 나왔다고 하지요. 뭔가 부당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해 그는 다시 도전을 한 것이지요. 분노가 그를 만들었듯 노숙을 하면서도 오직 만화가가 되어야 겠다는 하나의 꿈을 가졌던 그는 고등학교 동창생 모임에 대학 다니는 애들만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가가 되기 위해 허영만 화실을 나왔다고 합니다.

 

뛰어난 솜씨로 허영만 작가 밑에서도 승승장구하던 그는 빨리 작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열등감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선택한 작가 등용은 성공했지만 진짜 고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요.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슬럼프를 겪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만화의 기저에 깔려 있는 분노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무너졌고,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대로 만화를 그리지 못한 그는 가족 하나 챙기지 못하는 자신은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며 슬럼프를 벗어났다 합니다.

 

그 지독한 고비를 넘기고 나온 작품이 바로 '이끼'였습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이 만화는 그런 지독한 산고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습니다. '미생'이 인세로만 20억을 넘게 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윤태호의 이런 성공을 시기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만화 하나 그려가지고 그런 엄청난 돈을 버냐며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숙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했던 윤태호. 모질고 힘겨운 시간들 속에서도 창작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얻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감히 누가 그의 성과를 비하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허영만 화백이 그 20억이 많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동안 대충해서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모두 던져 얻은 결과를 그렇게 폄하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지요. 허영만 화백이 위대한 이유는 여전히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겁니다.

 

만화가로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그가 은퇴를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고 당연하다고 이야기를 할 겁니다. 지독한 3D라고 불리는 만화가의 삶을 살지 않아도 허영만 화백은 남은 평생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아들뻘 되는 후배들과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제자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밉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내는 그는 진정한 만화가였습니다. 제자의 성공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해야 겠다"며 만화를 창작하는 새로운 방식을 뒤늦게 배우고, 여전히 어린 만화가들과 어깨 싸움을 하는 진정한 만화가.

"너 정말 이 그림 좋다. 근데 나는 너한테 지지 않는다" "너가 내 선생이다"는 생각을 하며 배움을 멀리 하지 않는 허영만 화백은 진정한 만화가였습니다. 제자의 성공에 시기하는 한심한 존재가 아니라 제작에게도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자세와 정신이 있었기에 전설이 되었을 겁니다.

 

위대한 스승 밑에 위대한 제자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스승과 제자가 만나 함께 하는 '힐링캠프'는 그들이 왜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모든 것을 걸었던 삶. 성공할지 못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대단하게 다가왔습니다. 7포 세대에게 이런 그들의 모습은 성공만이 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질고 힘겨운 시간이 없었다면 현재의 성공도 없었을 거라는 점에서 허영만과 윤태호 그들은 진정 위대한 존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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