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이 시작되고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죽게 됩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알면서도 '육룡이 나르샤'에서 보여 지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힘과 연기자들의 연기가 탁월하기 때문일 겁니다. 김명민과 유아인이 보여준 마지막 10분은 그 긴장감이 극에 달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요동 정벌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가롭게 내일 있을 출병식을 기다리던 정도전과 남은. 그들은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회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말 지독한 현실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간 그들에게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남은의 집에 갑분이가 담을 넘어 들어오기 전까지 정도전의 미래는 아무런 걸림돌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갑분이가 들어와 이방지가 어디 있냐는 물음과 함께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선 적들을 피해 몸을 숨기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방원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이숙번이 중전 묘를 가꾸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오는 날 정변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안 받고 군병을 거느리고 들어올 수 있는 그날. 그렇게 이방원은 왕과 세자가 있는 궁을 에워싸고, 정도전과 남은 등을 죽이기 위해 나섰습니다.
조선 최고의 검객이자 정도전의 호위무사인 이방지를 떼어놓기 위해 연희를 이용하고, 그렇게 강력한 존재를 제거한 후 이방원은 남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방원을 중심으로 정변에 가담한 그들의 잔인한 모습들은 말 그대로 도륙에 가까웠습니다.
중요한 적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지고 죽을 때마다 태우는 이방원이 슬쩍 보이는 미소는 섬뜩하게 다가올 정도로 두려웠습니다. 너무 잔인하게 이어지는 도륙의 현장이 피로 흥건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정도전과 남은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정도전을 잡지 않으면 이방원의 정변은 수포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든 것의 끝과 시작은 삼봉이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좀처럼 찾을 수 없어 당황하던 이방원은 의외의 인물을 통해 정도전의 위치를 알게 됩니다. 정도전을 싫어했던 고려 말 부패한 사대부 중 하나였던 우학주가 우연하게 그가 성균관에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이 성균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으로 향한 이방원은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무장을 하고 반촌으로 들어선 것도 문제인데 대성전까지 무장을 하고 들어설 수는 없다며 성균관 앞에서 정도전 나오라고 외치는 이방원의 패기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하륜이 작성한 역사처럼 정도전이 두려움에 떨다 뒷문으로 도주하다 잡히기를 원했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선 정도전에 이방원이 경외심을 가지는 것 역시 당연했습니다.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자가 잘 해주기를 바라는 스승의 당부는 대단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했지만 그래서 쓰러트릴 수밖에 없었던 이방원은 그렇게 정도전을 죽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은 채 최후를 맞은 정도전의 모습과 그런 그를 무너트리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으로 분이를 스쳐 지나가는 이방원의 모습은 강렬했습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던 이방지와 연희의 운명도 정도전의 죽음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정도전을 무너트리기 위해 준비했던 상황에 이방지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방지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의 꿈에 모든 것을 건 연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방지가 정도전을 구하러 갈 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연희의 죽음 뒤 정도전을 구하러 성균관으로 향하던 방지는 입구에서 무휼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친형제 같았던 그들이 이제 서로 칼을 꺼내 겨뤄야 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답답할 뿐입니다. 최고의 무사인 무휼이 딱 한 번 졌다는 그 대결이 바로 이방지와의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도 궁금해집니다.
연기의 본좌라고 불리는 김명민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그가 보여준 연기는 역시 김명민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유아인의 연기 역시 대단했습니다.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들과 연기를 하면서 뒤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웠습니다.
김명민과 유아인이 보여준 오늘 방송은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것과 다른 최후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적 해석으로 풀어가기에는 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둘의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성균관에서 대치하며 그들이 보여준 연기는 눈 깜빡이는 것 하나마저 모두 철저하게 준비된 연기처럼 다가왔습니다.
둘이 아니면 결코 그런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연기는 최고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그래서 경멸하고 싶었던 스승을 죽이고 돌아서는 이방원의 모습.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전의 모습들은 '육룡이 나르샤'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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