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5. 11:29

동안선발대회 93세 할아버지가 욕먹는 이유

재미나 의미도 찾아보기 힘든 설 특집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네요. 11살 아들을 둔 93세 할아버지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에요. 논란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방송을 강행한 제작진들의 무뇌에 가까운 행동은 문제네요.

93세 할아버지보다 제작진들이 더 문제




동안 선발 대회에 93세 할아버지가 등장한 것이 의외는 아니에요.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 보이는 이들을 선발하는 대회이니 어쩌면 93세 할아버지가 더욱 의미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문제는 건강의 기준을 늦둥이로 평가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초등학생 같은 33세 남자가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작은 키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뜻 구분하기 힘든 그의 모습은 화제가 될 수밖에는 없지요. 더욱 함께 출연한 동생과 대비되는 그의 모습은 '동안선발대회'를 재미있게 해주었어요.

'동안선발대회'가 설 연휴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비결은 '스타킹'의 인기 비결과 비슷해요. 일반인들이 출연해 그들이 가진 사연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지요. 동안대회 1위를 한 70대 할아버지의 하반신 마비를 이겨냈다는 사연은 많은 이들을 눈물 나게 할 정도였어요.

여기에 가수 김종국의 성형외과 의사인 친형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것도 화제가 되었었죠. 방송에서 몇 번 자신의 형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실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기에 '실눈'이 닮은 그들 형제들이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어요.

이런 전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보기에 무난했던 '동안선발대회'가 욕을 먹는 이유는 당연했어요. 93세의 나이에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건강한 모습을 한 출연자의 등장은 좋았어요. 그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하니 말이지요.

문제는 그의 출연 이유였어요. 93세의 나이에 11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는 것 이였어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나이에 아들을 뒀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문제가 될 수밖에는 없었지요.

"인공수정은 아무 가치가 없다. 순리대로 낳았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말인지 그 나이 대 할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한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할아버지의 말은 극단적인 편견의 결과일 수밖에는 없었어요. 인공수정이란 임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이에요.

누군들 인공수정을 하고 싶어서 할까요? 자식을 가지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찾아 가는 것이 바로 의학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인 '인공수정'이에요. 이를 통해 평생소원인 자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 이 방송은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할아버지의 소신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인공수정' 자체를 비하하고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도록 한 제작진들의 잘못을 탓할 수밖에는 없지요. 자신이 그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공수정'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행동은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해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그 할아버지의 한 마디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수많은 부모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밖에는 없어요. 더욱 그 방송에는 인공수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어 결국 이혼까지 하고 홀로 사는 연예인까지 출연한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대단한 듯 추켜세우는 모습은 무척이나 보기 나빴네요.

그 할아버지는 방송인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일방적으로 뭐라 할 수는 없어요. 개인적인 의견으로 '인공수정'을 터부시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에요. 93세에 11살 아이를 둔 것 역시 자신의 의지이지 이를 두고 타인들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지요.

문제는 이런 할아버지를 출연시킨 방송국의 시각이 문제에요. 그 나이에 어린 아이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얄팍함이 만들어낸 사건이니 말이에요. 출연 전에 출연자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하지요.

인터뷰를 통해 출연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확인하고 방송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과 자신들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을 숙지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원활한 방송 제작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제작진들이 문제일 수밖에는 없어요. 제작진들은 93세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지 사전에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인공수정' 이야기 역시 돌발 발언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의 소신이고 사전 인터뷰에서 충분히 검증된 이야기였기에 편집없이 방송이 된 이유이기도 할 거에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힘겨운 부부들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는 '인공수정 비하' 발언을 당당하게 온 가족이 보는 방송으로 만들어낸 제작진들은 비난받아 마땅해요.

남아선호사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93세 할아버지를 비난할 수는 없을 거에요. 그렇지 않다면 좋겠지만 그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으니 말이지요. 자신이 기르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은 것이 무책임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다양한 대비를 했다면 이 역시 비난할 이유는 되지 못해요.

문제는 이런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던 제작진들이에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설 특집에 과연 이런 내용들이 방송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는 것은 절망스럽기 까지 하네요. 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지 제작진들은 진짜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전히 홈 페이지를 찾아 문제를 지적하는 많은 이들에게 제작진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설 특집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는 사실에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요.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는 절망에 가까운 출연자로 인해 좋은 취지의 방송은 최악이 되어버렸네요. 제작진들은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해 변명이든 사과든 표현을 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저 시간이 약이겠지 란 생각으로 나 몰라라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