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5. 15:24

누가 김제동을 환자로 몰아가는가?

<나는 가수다> 파문은 리얼이라는 포장으로 적나라하게 공개한 영상으로 많은 이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렸어요. 김영희 피디는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을 뿐이었다고 했지만, 선별적 판단에 의거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영상일 뿐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집중 질타를 받는 인물 중 하나인 김제동. 누가 그를 환자로 몰아가는 건가요?

김제동의 눈물, 그는 환자가 아닌 슬픈 오지랖 이었다




김제동의 그 한 마디. "그렇다면 재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좋을 듯한데요" 김건모의 '립스틱 발언'과 이를 부추긴 김피디. 이런 분위기에서 나서서 '재도전'을 외친 김제동과 이를 빌미로 전격적으로 '재도전'을 확정한 제작진으로 인해 <나는 가수다>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네요.

 

만약이란 있을 수 없지만 김건모가 '립스틱'에 어설픈 화살 쏘기를 하지 말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면. 오지랖 넓은 김제동이 넓은 오지랖은 그 자리에서 펼치지만 않았다면. 이런 상황들이 거듭되는 상황에서도 제작진이 단호하게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다면. <나는 가수다>는 어쩌면 새로운 예능의 신기원을 세우며 예능에 새로운 틀을 제시할 수 있었을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담합이라도 하듯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스스로 만족하며 밀어붙여 대중들의 반발에 무너질 수밖에는 없었어요. 대중들의 힘을 좌시하고 자신들만이 최고라고 생각한 그 우매함이 얼마나 헛된 짓인지를 보여준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억눌림이 상징적으로 표출되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문제는 김건모와 김제동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 일거에요. 재미있게도 둘은 예능을 알고 예능을 이용하고 활용할 줄 아는 존재에요. 김건모와 김영희 피디는 십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형 동생이었고 당시 예능과 가수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김건모로서는 민망한 상황에 자기 식 예능으로 정리하려는 마음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후에 목소리 상태가 엉망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민망함을 어떤 식으로든 풀어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여요. 이런 분위기에서 김제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너무 넓은 오지랖과 예능 감이었어요.

탈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윤도현이 1위를 했고 이런 상황에서 대선배인 김건모의 탈락과 민망함을 이겨내기 위해 농담을 수없이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건넨 "립스틱 퍼포먼스가 문제라면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 합니다"라는 제안으로 미안함을 대신하려 했다고 보여요.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총 책임자였던 김영희 피디였어요. 그가 중심만 정확하게 잡았더라면 그 모든 것은 정상이었을 거에요. 김건모의 어색함도, 김제동의 쓸데없는 오지랖도 이소라의 땡강 수준의 신경질도 모두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끝났을 테니 말이에요..

김제동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절친이기도 했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트위터를 통해서 였어요. 물론 이 글로 인해 의사로서의 책무를 망각한 짓이라는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닌 친한 친구로서 이야기를 나눴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지요.

"김제동이 울었다. '나는 가수다' 논란 속에 깊숙한 내상을 입은 것 같다. 그는 울고 울고 몸을 떨고 운다. 내 책상 위의 크리넥스 통을 다 비웠다"
"'무섭다. 사람이 무섭다. 내가 없어져 버릴 것 같다. 모든 게 내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맘 여린 사람 순으로 우리 곁을 떠나게 만든다, 여린 우리들이"

김제동이 후폭풍으로 몰아닥친 여론에 얼마나 상처받고 힘겨워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이 트위터 글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요.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만든 무서운 방송과 여론은 그가 방송에서 퇴출되었던 그 당시보다 더욱 아프게 다가왔을 듯해요.

"절친한 동생과 점심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눈 조금 특별한 일상적 대화의 일부 중 여러분들께 꼭 말하고 싶은게 있어서 쓴 글이다"
"그 글은 제동의 은밀한 개인적 갈등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좁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해 다급한 상황이 돼 '앞에 사람이 깔려있다'고 외친 제 심정을 담은 글이다"
"폭풍 인파에 깔린 사람이 겪는 고통은 내밀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밀어대는 사람의 문제다. 그의 고통을 사적으로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건 뒤에서 밀어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채 밀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 이 상황에 대해 빠르게 알려주는 일이다"
"김제동과 관련한 제 트윗에 대해 한 언론매체는 '연예인 환자의 상담기록 누설 파문'이라고 썼더라. 개념상실이다. 그 문장 중 연예인이란 단어 말고는 사실이 하나도 없다. 제동과 저는 누이동생 같은 사이다. 환자가 아니다. 환자 입장에서 말한 내용도 아니다. 제가 만나는 많은 관계, 사람 대 사람의 관계다"

정말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로 찾아온 김제동과의 대화를 트위터에 올렸다면 그녀는 의사로서의 자격 상실이 맞지요. 바보도 아니고 오랜 시간 정신과 의사로서 명망을 이어왔던 그녀가 의사와 환자 간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다만 김제동이 싫고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과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경험한 대중들의 화가 이런 상황까지 몰아간 것 일거에요. 누구보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 하려했던 김제동이, 비록 예능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나서서 원칙을 깨고 편법을 동원하도록 제안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는 없어요.

이제 모든 것은 끝났어요. 오랜 시간 김영희 피디는 일선에서 현장 피디로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요원해졌네요. 김건모는 20주년을 맞이한 올해 가수 김건모로서 가치 정립이 무너지며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이소라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보여진 은둔형 외톨이에 게임에 미쳐 살고 신경질까지 부리며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땡강 부리는 가수로 낙인이 찍혀버렸어요.


가장 건강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목소리를 내던 김제동은 그동안 힘겹게 쌓아올렸던 그 건강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네요. 그는 환자가 아니에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그 장이 예능이라는 틀이었다면 이제 조금은 넓은 아량을 보여줄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도 도움 안 되는 주홍글씨를 세겨 넣는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으니 말이에요. <나는 가수다>를 통해 보여준 이미지들은 오랜 시간 그들을 힘겹게 할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주홍 글씨 이상의 고통으로 남겨질 것이 분명해요. 이제는 가수로서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응원해주는 아량을 보였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