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5. 16:19

김희애 촬영 복귀가 반갑기보다 측은한 이유

김희애가 시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마이더스> 촬영에 임했다는 기사가 연일 화제이네요. 많은 이들은 그녀의 프로정신을 높이 사며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에요.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환경은 비관적이네요.

생방송으로 촬영하는 드라마 현장이 문제




최근 종영되며 작가와 배우가 신랄한 비판을 한 주말 드라마를 봐도 드라마 제작 환경이 문제가 크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어요. 사전 제작이 거의 없는 국내의 사정상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서 작가는 글을 쓰고 그렇게 나온 내용을 촬영해 방송 직전에야 테이프를 넘기는 생방송 같은 드라마 제작 환경은 항상 문제였어요.


이런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고 이런 저런 사고들 뿐 아니라 연기자들 역시 연기에 몰입할 수 없어 대충 촬영에 임할 수밖에 없게 되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주범이 되고는 해요. 많은 이들이 발 연기를 탓하지만 환경을 보면 발연기가 안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할 정도라니 더 할 말이 없을 지경이지요.


연기의 신이라 불러도 좋은 이순재가 작금의 드라마 환경을 보며 바뀌어야만 한다고 소리를 높일 정도면 할 말이 없지요. 과거에는 대본이 모두 나온 후 배우들과 리딩을 하고 문제점들을 서로 토론해서 촬영에 들어가기에 감정을 잡고 연기에 몰입하는 과정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해요. 촬영 직전에 나온 대본을 급하게 외워야 하고 그러다 보니 상대 배우들과의 논의는 고사하고 자신이 무슨 연기를 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은 드라마 제작진들은 심각하게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이지요.

촬영에 급급해 연기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드라마가 완성도가 뛰어나기는 힘들지요. 말초적인 자극들이 대세를 이루고 막장이 당연하게 언급되는 이유도 이런 드라마 제작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인지도 모르겠어요. 단발 적이고 에피소드 같은 막장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드라마를 제정신을 가지고 연기하기는 힘들 테니 말이에요.

<마이더스>역시 김희애가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했듯 생방송처럼 촬영되고 있다고 하지요. 주인공인 그녀로서는 시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촬영에 임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떤 것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삼일장을 지내지 못하고 현장으로 나서야 하는 그녀나 그런 그녀를 촬영장으로 보내줘야 하는 가족들이나 이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김희애가 오늘(15일)부터 '마이더스'를 촬영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주연인 자신이 빠지면 촬영 스케줄에 차질을 빚는다는 생각에 촬영을 강행하는 것 같다"
"16일 발인에 김희애가 참석하고 그 날 늦은 오후나 밤부터 다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마이더스'가 결방되는 사태는 발생되지 않을 것"

강행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집안에 커다란 우환이 있음에도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는 그녀로서는 단순히 프로답다는 말로 위로할 수는 없을 듯해요. 프로정신이 뛰어나 이런 상황에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일 수밖에는 없어요.

'위탄'에서 멘토로 활약 중인 김윤아가 한참 활동 중일 때 자신의 남자 친구가 과로사 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노래를 불러야 했고, 그런 게 프로 가수의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김희애의 경우 제작 시스템만 잘 되어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어요.

드라마 <마이더스>를 좋아하고 김희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녀의 촬영 복귀 소식이 행복하고 다행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시부상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측은하고 씁쓸하기만 하네요. 말도 안 되는 드라마 제작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유사한 일들은 계속 되겠지요.

드라마의 완성도도 떨어트리고 연기자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도 보장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드라마 제작 환경은 꼭 바뀌어야만 할 거에요. 가슴 시린 아픔을 안고 드라마 촬영을 해야 하는 김희애의 모습을 그저 감탄이나 하고 기뻐해야 할 일은 아닌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