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30. 14:32

박용하 1주기, 우리는 왜 그를 잊지 못할까?

배우 박용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벌써 1년이 되었네요. 너무 급작스러운 소식이어서 많은 이들은 오랜 시간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어요. 연예인이면서도 연예인답지 않았던 그가 그렇게 세상을 등진지 1년이 지난 오늘 그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팬들을 그를 위하 한 자리에 모였어요.

박용하, 그가 남긴 사랑이 이렇게 깊었었나?




매력적인 웃음이 참 좋았던 배우 박용하.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 가족들을 돌보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바쁜 시간들을 보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지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던 그는 그렇게 홀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보고 또 보고'를 통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널리 알린 그는 이 작품으로 연기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날개 짓을 시작했지요. 그런 그를 한류 스타로 만든 것은 2002년 '겨울연가'였지요. 배용준과 최지우 등이 사마와 히메로 불리며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듯 박용하 역시 일본에서 사랑받는 한류 스타가 되었어요.

단순히 배우로서의 자질 뿐 아니라 가수로서도 그 능력을 선보이며 팬들을 사로잡았지요. 국내에서는 가수로서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발매한 그의 앨범들은 오리콘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연기와 노래를 모두 잘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사랑을 받았어요.

개인의 욕심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뛰어났고 지인들에 대한 정이 누구보다 많았던 그는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겨워하는 지인들을 다독이고 응원하기까지 했어요. 그렇기에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의문일 수밖에는 없었지요.

걱정도 없이 잘 살 것만 같았던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죽기 직전까지 지인들과 함께 했었던 그는 그렇게 홀로 남겨진 시간 생을 마감하고 말았어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이를 위해 자신이 힘들게 뛰어야만 했던 현실. 소속사를 나와 독립해 새롭게 연기자 박용하의 인생을 살아가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은 세상에 그는 변변한 작별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하늘로 가버렸어요.

한국 판 '첨밀밀'로 알려진 <러브송>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안타깝기만 하네요. 힘들고 어려울 때 남들이 자신에게 의지하듯 자신도 지인들에게 의지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해요.


둘도 없이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그의 빈소를 지켰던 소지섭. 마지막 장지까지 울면서 친구와 함께 했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슬프게만 다가올 뿐이네요. 여전히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아가야 하는 소지섭에게도 박용하의 1주기는 그 누구보다도 힘들고 아픈 시간 일거에요.

박용하가 숨지고 난 후에도 그와 관련된 미담들은 쏟아져 나왔지요. 한 고등학교 방송국에서 축제에 사용할 축전을 부탁하는 쪽지들을 연예인들에게 전했는데 박용하만 쪽지를 보내왔다며 그 내용을 공개해서 팬들을 더욱 슬프게 했어요. 자신은 일정상 함께 할 수 없지만 과거 방송 반 활동을 했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한다며 다시 한 번 참가할 수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서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아픈 아버지를 위해 효도를 했던 박용하는 힘겨움을 짊어진 채 그렇게 먼저 떠나고, 위암을 앓던 그의 아버지마저 위암으로 같은 해 10월 22일 사망하며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어요.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아들과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그런 그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슬프게 만들었지요.

박용하의 죽음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그가 활동했던 일본에서도 큰 충격이었어요. 곳곳에 그를 추모하는 빈소가 만들어지고 그를 좋아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근조 화환을 보낼 정도로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각별했어요. 그의 죽음을 차분하지만 마음 깊이 간직했던 그들은 그렇게 1년이 흐른 오늘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1천 5백여 명이 직접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그를 추모해주었어요.

"당초 가족친지와 지인들만 모시고 간단하게 박용하의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일본팬들이 함께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 그 뜻을 거절할 수 없어서 고인의 가족들과 함께 박용하의 추모식을 진행할 것을 결정하게 됐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처럼 늘 아끼고 소중히 생각했던 박용하를 향한 팬들의 그리움과 사랑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요나엔터테인먼트가 밝혔듯이 간단하게 가질 추모식이었지만 박용하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일본 팬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하는 추모식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은 여전히 그를 보내고 싶지 않은 팬심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그를 잊지 못하는 일본 팬들로 인해 지난 3월부터는 '필름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었다고 하니 일본 팬들에게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였었나 봐요.

"용하를 보낸 지 벌써 1년이 됐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여름 절대 보내고 싶지 않은 용하를 보냈다"

"어떻게 1년을 버텼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용하는 우리 곁에 있을 때도 떠났을 때도 늘 우리를 지켜줬다. 용하의 자리가 너무도 크기에 아직도 우리는 용하를 잊지 못하고 있다. 쑥스러워서 사랑하는 말 한번도 제대로 못했기에 가슴이 사무친다"

"늘 꿈꾸는 소년처럼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용하, 이제 우리에게 맡기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용하가 바라는 건 꿋꿋이 살아가는 거란 것을 알기에 앞으로는 열심히 살겠다. 사랑한다. 그리고 보고싶다"

용하의 매형이자 요나엔터테인먼트의 김재현 대표의 추모사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 안타깝게 다가오네요. 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 이렇게 빨리 세상을 등져 버렸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에요. 그런 그를 잊지 않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상관없이 모인 팬들의 모습은 여전히 그가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네요. 

故 박용하씨가 하늘에서라도 마음껏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원해요. 그리고 수많은 팬들은 여전히 박용하를 마음속에 기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기를 바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