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8. 09:02

에릭의 한예슬 비판이 비난받는 이유

한예슬이 급거 귀국하고 촬영 복귀가 확정된 상황에서 함께 연기했던 에릭은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며 날선 공격을 하고 있네요. 한예슬의 행동을 옹호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에릭의 행동 역시 동조하기 힘들 만큼 옹졸할 뿐이네요. 제작환경이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그의 발언은 누구를 위함인가요?

정말 드라마 현장의 문제는 없는가?




한예슬만 비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제작 관행이 바뀌어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오직 한예슬만이 문제라고 한다면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왜곡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을 듯하네요.

한예슬이 현장에서 무슨일이 있었고 어떤 현실인지는 현장에서 경험한 이들의 몫이겠지요. 그들 역시 서로 간의 입장차는 시각에 따라 다른 말들이 나올 수밖에는 없고 이런 문제일수록 누가 옳은지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예슬만이 문제다라고 확언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요.

한예슬의 스타일리스트가 옹호하는 글을 적으며 열악한 현장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스태프들이 다시 성명서를 내면서 모든 게 한예슬 때문이다는 식으로 일지를 공개했는데요. 문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느냐는 빠져있어요. 그저 그 일지만 보면 한예슬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만 하는 인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매일 밤샘 촬영을 하면서도 박봉에 시달리며 방송 현장에서 살아야 하는 스태프들과 달리, 고액의 출연료를 받으며 상대적으로 좀 더 낳은 환경에서 일하는 배우들과의 괴리감은 분명 존재해요. 드라마 제작이 외주로 돌려지며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하니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히 <스파이 명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요.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 제작 현장이 이와 유사하고 부상을 무릎 쓰고 촬영에 임해야만 하는 상황들은 스태프든 연기자든 모두에게 문제가 될 수밖에는 없어요. 잠도 못자고 만드는 드라마가 완성도가 뛰어날 수는 없는 일이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촬영으로 편집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요. 이로써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 일 수밖에는 없어요.

한예슬은 급거 귀국해 사과를 하고 KBS 담당자와 만나 화해를 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에릭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예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어요.

"잘 모르는 미래의 후배보다는 현장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더 소중하다"

"막상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촬영을 이어가는 모두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

"한인간의 과오를 덮어 주는 건 분명 신실한일이지만, 용기 있게 그 잘못을 지적해 바로 잡아 주지 않거나, 그 과오로 인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스태프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실수의 '용서'가아니라 '용납'이 될 것"

일면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씁쓸한 것은 과연 그가 무엇을 위한 무슨 의미의 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은 없을 거에요. 그럼에도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촬영 현장이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영화와 드라마 등에 자주 출연했던 그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했을 리는 없고 그저 현장의 열악함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열악한 현장에 박봉으로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이런 방식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에릭이 진정 현장 스태프들을 위한다면 현실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제작 환경 역시 인간적인 방식으로 촬영이 가능하도록 개선되어야만 해요. 그런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한예슬의 행동들에 대해 불편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제작 환경이 바뀌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지요. 에릭이 불편해하고 비난하지 않는다고 해도 많은 이들은 한예슬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어요. 더욱 그녀의 다음 활동은 커다란 지장을 받을 정도로 이미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스태프의 이야기를 꺼내며 한예슬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행동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네요.

현장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오직 한예슬이라는 배우 하나면 문제가 되어 이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는 없지요. 한예슬의 잘못도 컸겠지만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작 환경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에요.

기획사, 제작사, 방송사 등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요. 그들이 이런 최악의 제작 환경을 만든 주범이고 이들로 인해 스태프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에요. 정작 문제를 지적하고 공격해야만 하는 대상은 같이 일하는 배우나 스태프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한 방송국과 제작사, 기획사 등일 수밖에는 없어요.

한예슬이 입국하는 날 스태프들에게 한 턱 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에릭. 한예슬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칭찬 문자 기사가 나오는 현실. 한예슬 문제와 함께 불거진 언론의 일방적인 시각과 에릭이라는 존재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네요.

정작 '용서'가 아니라 '용납'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제작 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구조적 문제가 아닐까요? 철저하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만 거대한 수익을 거두는 문화에서 스태프들의 처우에 대해 고민하고 신경 써야 하는 이들은 아무런 반성도, 변화도 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용서가 되는 것인가요?

정작 용서를 구하고 변화를 시도해야만 하는 방송국과 제작사, 기획사들은 기고만장해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라도 되는 양 한예슬이 눈물로 반성을 했다며 교만함을 인정했다며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네요.

정작 중요한 제작 현장의 열악함은 전혀 부각되지 않은 채 그저 상처만 임시 처방해 처리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방법으로는 결코 현장의 상황이 좋아질 수가 없지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계속 말도 안 되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최저 임금에 시달려야만 할 뿐이에요.

언젠가는 한 번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변화를 시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그저 일상적인 모습이니 배우들은 높은 출연료 받고 스태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일이 넘어가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지요. '내가 무슨'이 아니라 나부터라도 바꾸려 노력한다면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한예슬이 잔다르크처럼 미화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녀를 왕따시켜 논란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몰아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잘못하고 문제가 있음에도 정작 중요한 현장의 문제는 전혀 언급도 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피해자인 스태프들이 스스로 자신의 열악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련의 행동들은 아쉽기만 하네요.

자신들의 열악함보다는 그동안 호위 호식했던 배우의 이탈이 더 기분 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시스템에서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아닐까요? 에릭의 트위터 글이 기사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에릭에 대해 비난하는 그들이 많은 이유. 정작 중요한 제작 환경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