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9. 14:16

최고은 작가 죽음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 고민정 아나운서의 글

32살 故 최고은 작가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네요. 빈곤은 구시대 유물이라며 풍요만을 이야기하던 시절 최고은 작가가 차가운 방에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경악을 넘어선 충격이에요. 과연 그녀를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 것은 무엇인지 답답하기만 하네요.

고민정 아나운서의 글이 특별한 이유




최고은 작가가 죽고 나서 원인들에 대해 해석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네요. 그녀가 영화계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먼전 도마 위에 올려 졌어요.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현장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열악한 영화계 풍토는 당연히 개선되어야만 할 일이에요.

모든 어려움들은 현장 스태프들의 몫이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대가는 제작자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것은 문제가 클 수밖에는 없지요. 이는 단순히 영화계 뿐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었던 카라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철저하게 갑이라는 지위를 남용해 착취하는 데에만 열중할 뿐 을의 입장에 있는 이들을 위한 배려는 사라져버린 구조적인 문제는 제 2, 3의 최고은 작가를 만들어낼 수밖에는 없어요. 단순한 대중문화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런 문제가 산재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들 동감하는 부분일거에요.

돈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살게 팍팍한 세상이라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의견일 테니 말이지요.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잘살라고 세금도 줄여주고 그들이 마음껏 탐욕을 부리도록 만들어주는 정책은 다수의 서민들을 힘 빠지게 만들기만 하지요.

지병을 가지고 있어 다른 일을 병행하기도 힘들었던 32살의 시나리오 작가는 그 어느 해보다 추웠던 대한민국에서 겨울을 다 나지도 못하고 잠들고 말았네요. 설 연휴라고 들떠 있는 상황에서 며칠 째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그녀는 전기장판에 온기마저 사라진 차가운 방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는 없었어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이웃집에 '남는 밥과 김치 좀 달라'는 메모를 남긴 것은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하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어요. 그녀의 죽음은 단순히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회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에게는 냉혹하기만 하기에 그런 죽음들은 반복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에요.

그녀의 죽음이 알려지자 어느 여배우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만 따뜻했던 현실을 반성하기도 했어요. 성공한 작가는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다고 해요. 많은 이들은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런 많은 이들의 추모 중 가장 돋보이는 글은 시인의 부인이자 아나운서인 고민정의 글이었어요.

"하루 종일 바쁜 일정으로 트윗도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열어봤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
"최고은 작가의 죽음, 마치 결혼 전 옥탑방에 살던, 지금은 내 동반자가 된 이 사람이 눈을 감은 것만 같아 자꾸 가슴이 아파온다"
"연애시절 보게 된 그의 시에서 그는 몇백원이 없어 수 시간을 걸어 집에 갔다고 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무명작가를, 감독을, 음악인을 진심으로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동정 말고 그냥 따스한 사랑"
"소개팅 자리에 무명작가가 온다고 하면 만나보려고도 하지 않는 거 말고, 내 팍팍한 삶을 보드랍게 해주는 이와의 만남을 사랑해 주길, 지인이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일단 많이 응원해주고 좋아해주길. 가식적인, 일회성 관심 말고 진심으로, 사랑해주길"


그녀가 트위터에 올린 글처럼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남일 같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남편 역시 그런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야만 했기 때문일 거에요.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가난한 시인과 결혼한 고민정 아나운서는 결혼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아나운서의 결혼은 재벌이나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과의 결혼에 익숙한 일반인들에게 가난한 시인과의 결혼은 화제일 수밖에는 없었죠. 학창시절부터 연애를 했었던 그들이 여자의 성공이후에도 변치 않고 결혼까지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어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가난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단순히 돈 버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천대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의미심장하지요. 어설픈 일회성 응원이나 가식이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 힘겨운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보내달라는 그녀의 발언은 그 어떤 이의 말보다도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네요.

나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고 돈 잘 버는 것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발언은 진리일 수밖에는 없지요.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돈보다 값진 것은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돈 못 버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천대받는 이들일 수밖에는 없어요.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며 버티고 있는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무척 중요할 수밖에는 없지요.

이런 우리의 시선과 함께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현실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수많은 최고은 작가들로 인해 무덤으로 변해버릴지도 몰라요. 부당한 사회에는 부당함이 정당함이 되어 거대한 부를 쌓아올리는 소수와 착취당하는 다수밖에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회가 약자의 편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론화해야 할 거에요. 단순히 영화계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과 가진 자들만을 위한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변화도 시급히 이뤄져야만 할 거에요.

차가운 방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최고은 작가가 하늘나라에서만큼은 자신이 쓰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로 행복한 날들 보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되네요. 남아있는 수많은 제 2의 최고은들이 같은 불행에 합류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은 이제 살아있는 이들의 의무가 되겠지요. 참 허탈하고 민망해지는 날 들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