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3. 14:01

미생 김대명 우리는 왜 김 대리의 분노에 환호할까?

이번 주 방송된 '미생'은 7.373%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지상파 드라마도 5%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케이블 드라마가 7%를 넘었다는 사실은 대단합니다. 이미 원작이 찬사를 받았던 만큼 드라마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았고, 많은 이들은 원작을 뛰어넘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연일 호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프로 바둑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장그래가 바둑을 그만두고 상사에 들어가 겪는 일상을 담고 있는 '미생'은 정말 특별한 것이 없는 드라마입니다. 직장인들의 일상과 바둑을 정교하게 엮어낸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아 더욱 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빠지지 않는 삼각관계도 여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썸 비슷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은 '미생'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라마의 기본 매뉴얼을 무시한 이 드라마의 성공은 그래서 반갑기도 합니다. 

 

삼각관계와 막장이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즐거워한다는 사실은 기존의 드라마 시장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지요. 그동안은 막장을 위한 막장 전개만이 곧 해법이라는 식의 드라마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미생'은 이와 전혀 다른 그래서 더욱 특별해진 그들로 인해 국내 드라마 시장도 다양하게 변화될 수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17회에 주목하게 된 인물은 평범한 김 대리였습니다. 곱슬머리로 항상 사람 좋은 미소만 보이던 그가 오늘 격한 욕까지 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초반 그래를 의심하고 힘겨워하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장그래를 위하고 그를 위해 도와주는 멋진 선배였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같이 입사해 대리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상사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게 된 것과 달리, 김 대리는 발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발령이 한 번 났지만 거부했던 그는 영업3팀의 공헌으로 인해 자신도 주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과는 자신을 제외하고 주변 대리들이 원하는 지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게 된 상황에서 아쉬움을 크게 느꼈습니다. 

 

김 대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오 차장이 느끼는 미안함은 컸습니다. 한직이라고 불리는 화장실 옆 영업3팀에서 제대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무 라인도 아니고 사장 라인도 아닌 영업3팀은 다른 이들에게는 경시되는 곳이었으니 말이지요. 최근 영업3팀으로 오게 된 천 과장마저 김 대리가 성공하려면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김 대리의 낙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던 오 차장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그곳에서 대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들은 오 차장이 있는 것도 모른 채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이는 곧 오 차장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자신이 아끼는 김 대리가 앞길이 막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컸기 때문이지요.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장그래마저 정규직으로 만들어주지 못해 마음고생이 컸던 오 차장은 김 대리의 주재원 탈락에 더욱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그래와 둘 만이 남은 상황에서 오 차장은 넋두리를 하듯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살면서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파리 뒤를 쫓으면 변소나 어슬렁거릴 거고, 꿀벌 뒤를 쫓으면 꽃밭을 거닐게 된다"

 

오 차장은 자신으로 인해 능력을 가진 어린 후배들이 성장에 방해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내놓은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을 파리라고 치부하며 김 대리와 장그래가 이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낙담이었습니다. 다른 부서의 유능한 상사를 만났다면 성공했을 텐데 미안하다는 우회적인 표현이었지요.

 

낙담해 있던 오 차장에게 건넨 장그래의 발언은 그래서 더욱 압권이었지요. "아하..저는 그래서 꽃밭을 걷고 있는 가 봅니다"라며 웃는 장그래를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오 차장의 모습은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지요. 오 차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던 장그래는 그런 상사에게 힘을 주기 위해 파리가 아닌 꿀벌이라고 칭하는 그는 그래서 아름다운 청년이었네요.

 

상사는 아래 직원을 위하고, 그들은 상사의 진심을 알고 그를 존경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직장 생활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모습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의 모습은 너무 리얼하지만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훈훈함과 끈끈함은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직장인의 삶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자신과 동기인 선 차장을 돕기 위해 신입사원들을 주말에 불러 일을 하는 오 차장. 선 차장이 느끼는 자괴감과 배신감을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오 차장에 신입사원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귀중한 주말을 자신의 상사도 부서도 아닌 선 차장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과로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선 차장을 위해 오 차장이 나서서 어벤져스를 구성해 일을 하는 상황은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한석율이 이야기를 하듯 "후에 우리가 동일한 상황에서 오 차장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모두가 공감하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돕는 오 차장은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을 희생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김 대리와 장그래를 위해 그는 자신의 철칙마저 꺾으며 최 전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독이 든 성배일 수밖에 없는 5억불 사업은 잘못하면 영업3팀만이 아니라 오 차장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성공시키면 최 전무는 부사장이 될 수 있고, 장그래는 정사원이 될 수 있으며 김 대리는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렇게 오 차장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후배들을 위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누구보다 오 차장을 잘 알고 존경하는 김 대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이곳에 있었습니다. 눈치를 보거나 승진을 하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일이 좋아서 일을 하는 순수한 로맨티스트인 오 차장의 열정을 김 대릴 배우고 싶고, 그처럼 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순수해서 비난을 받는 상사를 위해 평소에 보이지도 않던 욕을 하면서까지 술자리에서 행패를 부리는 김 대리는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정당한 열정을 미련하다고 보는 세상. 바보처럼 일에 집중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오 차장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그런 그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김 대리가 있어 행복합니다. 장그래의 정규직을 위해 자신을 던지 오 차장. 그는 우리시대가 정말 원하는 상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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