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1. 06:33

나는 가수다, 망친 건 김건모인가 김영희인가?

최고의 가수 일곱 명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나는 가수다>는 '재도전'으로 최악이 되어버렸어요. 감동도 의미도 퇴색시켜버린 이 만행은 앞으로 <나는 가수다>를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지요. 이 모든 잘못은 첫 번째 탈락자가 된 김건모인지 총 책임을 맡은 김영희인지 알 수가 없네요.

재도전이 나는 가수다의 흥미를 없애버렸다




원칙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해요. 원칙이 흔들리면 모든 것들이 흔들릴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나라를 운영하는 문제에서 부터 동네 축구팀을 운영하는 데에도 자체적인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존립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는 없지요.

 

예능이라고 다르지는 않아요. 자신들만의 원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물들에 시청자들을 매주 보면서 재미를 공감하게 하지요. 오디션 등의 프로그램은 탈락과 합격이라는 선택이 기다리고 있기에 더욱 중요할 수밖에는 없어요. 하물며 여행 버라이어티인 '1박2일' 레이스조차도 원칙이 뭐냐는 질문에 이어 그렇기에 이는 조작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기도 하니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할 수밖에는 없어요.

<나는 가수다>는 국내 최정상급 가수 일곱 명이 등장해 무대 위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참관한 500명의 투표를 통해 한 명의 탈락자를 내는 방식의 쇼에요. 그들이 스스로 '서바이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듯 살아남는 자와 탈락하는 자 사이의 그 긴박함과 안타까움이 이 쇼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요.

다른 예능과는 달리 최고수 가수들을 등장시켜 경쟁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탈락과 새로운 도전자를 받아들이는 형식은 흥미를 유발했어요. 방송이 시작된 후 아이돌 전성시대 찾아보기 힘들었던 진정한 가수들의 무대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지요.

'세시봉'이 방송된 후 전국적으로 70, 80년대 포크 음악 붐이 일어났듯 최고의 가수들이 참여하는 <나는 가수다>는 그들의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이끌어냈어요. 비록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기는 했지만 최고 가수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대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최고였으니 말이에요.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와 수행을 통해 냉정한 평가를 받고 결과에 따라 새로운 참가자들과 다시 대결을 펼친다는 그들의 원칙은, 너무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나는 가수다>를 지속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어요.


자신의 대표 곡이 아닌, 80년대 유행했던 곡을 랜덤으로 선택해 편곡으로 거듭난 그들의 무대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함과 깊은 내공을 가진 가수들의 무대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어요. 윤도현이 부른 '나 항상 그대를'은 무대를 가득 매운 화려한 사운드는 밴드 음악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경험하게 해주었어요.

호소력 짙은 이소라의 '너에게로 또 다시'나 김범수의 '그대 모습은 장미' 같은 곡들은 정말 <나는 가수다>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공연이었지요. 물론 다른 참가자들 역시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며 편곡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어요.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모순인 상황에서 원칙적으로 1등이 있고 꼴찌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500인의 선정 단이 투표해 얻어진 결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만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락자가 다름 아닌 김건모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자타공인 최고의 가수인 김건모가 첫 번째 탈락자였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오늘 방송된 모습만 보면 그의 탈락이 놀랍지는 않았어요. 다른 가수들에 비해 그가 월등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으니 말이지요.

더욱 500인의 선정 단이 자신의 기준 하에 신중하게 심사한 내용을 단순히 '립스틱 퍼포먼스' 때문에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의의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어요. 가수 스스로 뭔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원인을 찾다 안 해도 되는 퍼포먼스를 실패의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문제는 총 책임자인 김영희 피디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분위기를 몰아갔다는 것이에요. 하늘같은 선배이자 친분이 두터운 사이에서 당연히 그에게 동정 여론이 모아질 수밖에는 없고 그렇게 만들어진 '재도전'은 편법일 수밖에는 없었어요.

제작진들이 나서서 정리를 하면 좋았겠지만 스스로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당사자인 김건모에게 넘기는 상황은 비겁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김건모의 입장에서는 깨끗하게 승복하고 멋있게 퇴장하는 것은 동료 가수들에 대한 예의임에도 불구하고 '재도전'을 받아들임으로서 <나는 가수다>의 기본 원칙을 깨트리며 나락으로 빠트려 버렸어요.

원칙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원칙은 원칙으로서의 의미가 없지요. 더욱 누군가는 탈락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위배되는 편법을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상황에서는 공정함을 담보하기는 힘들어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에요. 일차적으로 아쉽더라도 원칙에 맞게 받아들였어야 하는 김건모의 잘못이 커요.

열심히 준비하고 멋진 무대를 만든 다른 가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500인이 신중하게 투표를 한 것 마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이런 담합 같은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여기에 제작진들이 나서서 방송을 지킨다는 명분인지 모호하지만 김건모의 '재도전'을 부추기고 옹호하는 발언은 스스로 만든 원칙을 무너트리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어요.

이미 지난주부터 김건모가 탈락했다는 이야기들은 나돌았어요. 오래 전에 녹화를 했었기에 탈락자 등은 누군가는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에요. 문제는 자신의 탈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하자고 요구하며 행패를 부려 어쩔 수 없이 재녹화를 해야만 했다는 말이 사실로 드러난 듯해 씁쓸하기만 하네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몰아가기 힘들 정도로 김건모와 김영희 피디 모두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했어요.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원칙도 없는 <나는 가수다>는 '서바이벌'이라는 의미가 무색한 방송이 되어버렸네요. 기준도 없고 원칙도 없는 방송에서 그나마 최고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모호하네요.

어쩌면 둘 다 <나는 가수다>의 성공을 위해서 과감하게 하차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네요. 원칙을 세워놓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되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