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4. 12:12

김완선, 담담함 속에 드러낸 아프고 슬픈 과거

86년 데뷔한 김완선은 여전히 매혹적이었어요. 과거의 차가운 이미지가 아닌 많이 편안해진 모습이기는 했지만 여전한 그녀의 매력은 숨길 수가 없었지요. 6년 동안의 공백을 깨고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그녀는 <무릎팍 도사>에서 남들이 알지 못했던 슬픈 과거를 드러냈어요.

김완선, 13년 동안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인생




데뷔 26년차 가수 김완선.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뭇 남성들의 로망이기도 했던 그녀의 복귀는 무척 반가웠어요. 섹시 아이콘으로 웨이브의 여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새로운 앨범과 함께 무릎팍을 찾은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김완선을 따라 다니던 수많은 루머들에 대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발끈하기는 했지만 이내 해탈의 경지에 오른 모습으로 그 수많은 루머들을 머쓱하게 만들었어요. '닦'과 관련된 루머에는 자료가 있을 텐데 그럼 그 자료를 보여 달라며 "한번 이미지가 맹하게 되니까 죽을 때까지 가는 것 같다"며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그녀의 화법은 재미있었어요.

홍콩 재벌과의 결혼설에 대해서는 "사실이었으면 좋겠네요"로 있지도 않았던 수많은 루머들에 명쾌하고 재치 있게 답변해 주었어요. 있지도 않은 사실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는 그녀로서는 말하지 않고 있으면 자꾸 커지는 루머들이 말과는 달리 무척이나 그녀를 힘들게 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게 했어요.

하지만 이런 루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어쩌면 김완선이 자신에게 가해진 숱한 루머들에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 더욱 힘겨웠던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나 봐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모 밑에 들어가 연습 생 생활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그녀의 삶은 결코 화려하거나 멋있는 삶이 아니었어요.

15살에 가수 출신 국내 첫 여성 매니저였던 한백희의 사무실에서 연습 생으로 연예인 인생을 시작했던 김완선이 42살이 되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18살에 데뷔해 한국의 마돈나라는 칭호를 받으며 최고의 댄스 가수로 살았던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화려함과는 달리, 한없이 외로운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가수 김완선을 키워낸 한백희의 트레이닝 방식은 현재 아이돌을 양산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그렇고 보면 한백희는 현재 아이돌 기획사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단순히 스타일 뿐 아니라 철저하게 김완선을 매니지먼트하며 개인적인 삶까지 구속했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의 아이돌 관리와 다를 게 없어요.

충격적이었던 것은 13년 동안 일했던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사실 이였어요. 친 이모이기에 더욱 그 상실감은 클 수밖에는 없었을 그녀의 억울함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지요. 데뷔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음반 한 장을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였던 김완선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네요.

착취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녀. 돈보다 더욱 아픈 신뢰가 깨진 것은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을 듯하네요. 남자 잘못 만나 조카를 착취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던 이모. 남자에게 버림받고 노년에 지병으로 병원을 다녀야 했던 그녀를 측은해 하는 김완선의 모습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 듯 그녀의 눈물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임금 착취보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녀의 인간관계를 막은 행동이었어요. 철저하게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15살 때부터 27, 28살 때까지 친구를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러웠어요. 그녀가 이모와의 결별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로 '이모의 아바타'가 되기 싫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철저하게 돈 버는 기계가 되어야만 했던 김완선에게는 자기 정체성이란 없는 삶이었으니 말이에요.

그 오랜 시간동안 화려함 속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과 아픔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깊은 내상이었을 거에요. 2006년 이모의 죽음 이후 하와이로 이민을 가서 학교를 다니며 그녀가 아픈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듯, 시종일관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그녀의 모습은 연민마저 느끼게 만들었네요.  

"속상한 게 그거다.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인생이 달라진다. 차라리 이모가 자신한테 돈을 썼다면 덜 억울할 것 같다"
"그 부분에서만 불만이었다.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너무 잘해주셨다. 이모는 24시간 제 생각밖에 안 했다. 긴 공백 후에도 다시 활동할 수 있게끔 자리매김을 해주신 분이다"

금전적으로는 말도 할 수 없는 착취를 당했지만 자신에 대한 애정을 한없이 보여준 이모 한백희에 대한 원망보다 앞선 연민의 정을 느끼며 눈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어요.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손무현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보물 같은 뮤지션들이 만든 가수 김완선. 그녀의 컴백이 반가운 것은 오랜 내상을 입으며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내고 밝은 웃음으로 찾아왔기 때문이에요.

가수로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 김완선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지게 되네요. 더 이상의 눈물이 아닌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가는 김완선을 볼 수 있기를 바라네요.